Artist's Note
묵시록 默示錄
신상호|도예가
나의 창작은 언제나 모든 여정에서 만나는 것들을 눈과 귀로 조용히 담는 데서 시작되었는데, 그렇게 가만히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온 것들은 끊임없이 잠들고 재생하길 반복하다가 서로 만나서 어떤 형상을 갖추고 뇌리에 눈부신 조명이 번쩍 밝아오듯 나타나곤 했다.
2017년의 여름도 그러했다. 서른 초반 부곡리에 작업장의 터를 잡고 가장 먼저 느티나무를 심으며 이 나무들이 나의 희로애락을 같이 할 동반자이자 수호목이 되어 주리라 기대했다. 수십 년이 흐른 그해 어느 날 장성한 나무들이 문득 시야에 들어와 나는 이 나무들을 ‘흙으로 그리기로’ 결심했고, 그 이래 평면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직전의 <생명수> 연작이 탄생했고 수관의 선분이 꽤 선명히 드러나는 초기의 형태는 점차 추상화되고 어느새 나무의 형상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단계에 다다랐다. 그것은 어떤 거대한 지형도 같기도 하고,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봤을 때에 비로소 실체가 보이는 아주 작은 무언가의 확대도를 연상하게도 했다.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상형자의 혼합 같기도 하고, 어떨 땐 티끌만이 유영하는 무위의 세계였다. 미세한 것과 거대한 것, 형상과 의미, 무위와 길들임 사이를 순환하고, 허물고 세우기를 반복한 5년여 간의 시간을 거쳐 <묵시록(默示錄)>이 완성되었다.
<묵시록>이 지닌 생성과 종말, 시작과 끝이 닿아 있다는 극과 극의 순환의 비유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평면작이 좀 더 입체적인 느낌으로 공간에 번안될 수 있을까를 고심하며 과거 작품을 요리조리 병치해 보았다. 동일한 사물이라도 무엇과 함께, 어떻게 놓이는가에 따라, 심지어 각도를 아주 미세하게 트는 것만으로도 관점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지면 국면이 완전히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합을 달리하는 것은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과 진배없다.
특히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오밀조밀한 전시 공간을 상상하며 공간 내 설치될 작품 간 긴밀한 느낌을 증폭시킬 수 있도록 <묵시록>과 과거 입체작을 결합해 배치를 여러모로 시도해 보았다. 서로 다른 작품이 만났을 때 반목하며 불협화음을 내든,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상생의 효과를 취득하든 평면작이 입체작의 배경으로 으레 전락하는 도식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입체 작품을 오히려 시선이 잘 가닿지 않는 바닥 높이, 또는 기존 문법보다 높은 눈높이나 평면작의 모서리께 배치해 ‘묵시록’의 세계 내 어느 시점에 도달한 건지, 또는 퇴장을 앞두고 있는 건지 모호하도록 했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묵시록>은 광의의 분류로 평면작에 해당됨에도 측면으로 눈길이 흐르며 상당한 흙의 두께와 무게감이 본능적으로 감지되고 유약 처리하지 않은 흙의 즉자성이 전달되었으면 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흙으로 출발했고, 끝까지 흙을 만지고 있을 흙작가이기 때문이다.

▲ 묵시록_청(靑) / Book of Revelation_Blue Ceramic, acrylic 130.5 × 194cm 2024
▲ Dream of Africa_Horse Glazed ceramic 40 × 67 × 17cm 2024